
2026년 7월 12일 다마스쿠스에서 열린 아사드 이후 첫 인민의회 개원은 승리의 축포가 아니라, 50만 명의 죽음과 절반이 흩어진 국민 앞에서 "공존이 가능한가"를 묻는 시험대의 시작이다.
한 사람의 눈물에서 시작한다
다마스쿠스 외곽 구타에는 가족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는 남자가 산다. 내전 중 화학무기 공격으로 아내와 아이들을 잃고 혼자 살아남았다. 그는 새로 문을 연 의회를 향해 정치를 요구하지 않았다. 아이가 폭격 소리 없이 잠들 수 있게 해 달라고, 아침에 빵이 있게 해 달라고 말했을 뿐이다. 중동의 갈등을 오래 연구해 온 학자의 눈에도 이 아버지의 눈물은 영토와 주권이라는 거대 담론보다 무겁다. 국가는 이런 눈물 위에 세워지거나, 이런 눈물을 밟고 무너진다.
그 눈물이 도착한 곳
2026년 7월 12일, 그 눈물이 마침내 의사당 문 앞에 도착했다. 백발의 노인과 케피예를 두른 청년, 검은 히잡을 쓴 여성이 차례로 계단을 올랐다. 아사드 가문의 철권통치가 무너진 뒤 처음으로 구성된 인민의회가 첫 회의를 소집한 순간이다. 210석 가운데 140석은 선출되었고 70석은 대통령이 지명했다. 완전한 민주주의라 부르기에는 이르고, 거수기 의회라 부르기에는 이미 다르다. 수천 년의 세월을 견딘 돌바닥 위로 아직 화약 냄새가 남아 있는 도시에서, 서툰 악수와 거친 토론이 시작되었다.
무너진 것은 정권이 아니라 우상이다
시리아의 비극은 1970년 하페즈 알-아사드가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순간부터 예고된 우상화의 변주곡이다. 부자(父子) 2대에 걸친 54년의 통치는 인구의 10% 남짓한 알라위파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70%가 넘는 수니파 다수를 억누르는 방식으로 유지되었다. 2011년, ‘다라’의 학생들이 벽에 남긴 낙서 하나가 촉발한 저항은 잔혹한 군사 진압을 거쳐 14년의 내전으로 번졌다. 정권은 외부 강대국의 공중 폭격과 지상군에 기대어 자국민에게 폭탄을 떨어뜨렸다. 그러나 인간이 세운 불의한 탑은 끝내 스스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2024년 12월, 철옹성은 역사 속으로 침몰했다.
의석에 앉은 조각보
해방의 기쁨은 짧았다. 의석에 앉은 사람들의 면면이 곧 시리아가 안고 있는 갈등의 모자이크다. 수니파 아랍인, 북동부의 쿠르드족, 정권의 방패막이로 이용당하면서도 생존을 위협받던 소수 기독교 공동체, 그리고 정권의 기반이었으나 이제는 보복을 두려워하는 알라위파가 한 공간에 앉았다. 이들이 물려받은 것은 국가라는 이름뿐이다. 약 50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전쟁 전 인구의 절반이 국경 안팎에서 떠돈다. 지금의 시리아는 나라가 아니라 거대한 수용소에 가깝다.
통치의 첫 시험은 헌법이 아니다
그래서 이 의회가 통과시켜야 할 첫 안건은 화려한 헌법 조항이 아니다. 내일 아침 주민에게 나눠 줄 밀가루의 확보이고, 끊어진 상하수도의 복구이며, 무너진 병원의 재건이다. 의사당 안에서 정파들이 마이크를 잡고 지분을 다투는 동안, 난민촌에서는 추위와 영양실조로 쓰러지는 생명들의 가냘픈 숨이 이어진다. 정치의 정당성은 연설의 길이가 아니라 빵의 무게로 증명된다.
평안이 없는데 평안하다고 말하지 말라
예레미야 선지자는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평안하다"고 외치던 지도자들을 향해, 평안이 없는데 평안하다고 말한다며 통곡했다(예레미야 6:14). 오늘의 다마스쿠스에도 같은 유혹이 있다. 개원식의 박수 소리로 50만 개의 무덤을 덮으려는 유혹, 새 권력의 이름으로 옛 보복을 되풀이하려는 유혹이다. 화학무기의 공포 속에서 숨진 아이들의 영혼이 이 광경을 내려다본다면, 그들이 묻는 것은 누가 권력을 잡았느냐가 아니라 누가 아이의 손을 잡아 주었느냐일 것이다.
공존은 감상이 아니다. 공존은 원수를 사람으로 다시 보는 훈련이며, 그 훈련은 언제나 가장 약한 자를 먼저 세우는 데서 출발한다. 알라위파 이웃을 두려움 없이 시장에서 마주치는 날, 쿠르드족 아이가 자기 언어로 교과서를 읽는 날, 기독교 공동체가 종소리를 낮추지 않아도 되는 날, 그날 비로소 시리아는 국가가 된다. 서툰 악수는 그 먼 길의 첫걸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