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대표하는 작곡가 딱 한 사람만 꼽으라면 누구일까요?"라고 음악학자들에게 묻는다면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를 선택할 것입니다. 비록 냉전시대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았었지만, 그는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와 함께 소비에트 연방(소련) 음악을 이끈 거장이자, 자신의 삶과 격동의 시대를 온전히 음악으로 기록한 작곡가였습니다.
1906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쇼스타코비치는 어릴 때부터 피아노와 작곡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습니다. 열아홉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발표한 교향곡 제1번은 사실 그의 대학 졸업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놀라운 완성작은 곧바로 베를린과 뉴욕 등 세계 주요 도시의 무대에 오르며, 젊은 천재의 탄생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음악적 생애가 항상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1936년, 그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이 큰 성공을 거두며 한창 상연되던 중, 독재자 스탈린이 공연장을 찾았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스탈린은 공연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떠났고, 며칠 뒤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에는 "음악이 아니라 혼돈"이라는 혹독한 비판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 순간부터 쇼스타코비치는 순식간에 국가의 적이자 비판 대상으로 전락했습니다. 언제 숙청될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던 그는 이미 완성해 둔 교향곡 제4번의 초연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작품은 그로부터 무려 25년이 지난 뒤에야 겨우 세상의 빛을 보게 됩니다.
위기에 빠진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작품은 1937년에 발표한 교향곡 제5번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소련 체제의 요구를 받아들인 웅장한 곡처럼 보이지만, 많은 음악가는 그 속에 억압받는 인간의 슬픔과 소리 없는 저항이 숨겨져 있다고 해석합니다. 특히 3악장의 깊은 슬픔은 초연 당시 청중들의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마지막 악장의 승리가 진정한 기쁨을 뜻하는지, 아니면 살아남기 위해 강요된 환호인지는 지금도 음악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논쟁거리입니다.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나치 독일이 레닌그라드를 포위했을 때, 그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교향곡 제7번 '레닌그라드'를 작곡했습니다. 이 곡은 전쟁의 비극과 이에 맞서는 인간의 저항 정신을 상징하는 명곡이 되었고, 전 세계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스탈린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교향곡 제10번을 통해 독재와 공포의 시대를 고발하고 자유를 향한 갈망을 표현했습니다. 평생에 걸친 검열과 정치적 압박 속에서도 그는 15개의 교향곡, 15개의 현악 4중주, 그리고 수많은 협주곡과 오페라, 영화음악까지 방대한 작품을 남겼습니다.
쇼스타코비치 음악의 가장 큰 매력은 '극적인 대비'입니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다가 갑자기 폭발하듯 웅장한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터져 나오고, 희망과 절망이 한 곡 안에서 끊임없이 교차합니다. 마치 우리 인생에 웃음과 눈물이 늘 함께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풍자와 아이러니'입니다. 독재 체제를 드러내놓고 비판할 수 없었던 그는, 겉보기에는 밝고 경쾌한 행진곡 같은 음악 속에 깊은 슬픔과 조롱을 숨겨 두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처음 들을 때는 신나지만, 다시 들으면 전혀 다른 감정이 가슴을 저미게 만듭니다.
곡 속에 자신의 서명을 숨겨 두는 비밀스러운 재미도 있었습니다. 후기 작품에는 그의 이름(Dmitri Schostakowitsch)의 머리글자를 독일식 음이름으로 바꾼 'D-Es(미♭)-C-H(시)'라는 네 개의 음(DSCH 모티브)이 자주 등장합니다. 음악 여기저기에 자신만의 친필 사인을 새겨 넣은 셈입니다.
그의 작품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곡이 바로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왈츠 제2번〉입니다. 흔히 《재즈 모음곡 제2번》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바리에테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에 포함된 곡입니다. 오리지널 재즈 모음곡의 악보가 전쟁 중에 사라지자, 1988년 첼리스트이자 지휘자인 로스트로포비치가 이 곡을 서방 세계에 처음 소개하면서 친숙한 '재즈 모음곡'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이 오늘날까지 굳어진 것입니다.
애잔하고도 매혹적인 왈츠는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과 한국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 삽입되어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클래식을 잘 모르는 분이라도 전주만 들으면 "아, 이 곡!" 하고 무릎을 칠 만큼 친숙한 멜로디입니다.
베토벤이 운명에 맞서 싸우는 인간을 노래했다면, 쇼스타코비치는 서슬 퍼런 독재의 시대를 묵묵히 버텨낸 한 인간의 양심을 음악으로 기록했습니다. 그의 음악에는 차가운 가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을 향한 뜨거운 온기가 함께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 오늘은 잔잔하게 가슴을 파고드는 애수 어린 선율,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을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의 위대한 음악 세계로 들어가는 가장 아름다운 문이 되어줄 것입니다. 리처드 용재 오닐의 연주는 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