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형목사 해설: 사도행전 25–26장, 가이사 상소와 아그립바 앞 변증


장재형목사의 해설로 사도행전 25–26장을 다시 읽으며 바울의 가이사 상소, 베스도와 아그립바 앞의 변증, 유대전쟁 전야의 역사와 하나님의 섭리를 자연스럽고 깊이 있게 조명합니다. 법과 신앙, 수사와 영성, 역사와 소명이 교차하는 장면 속에서 복음이 로마의 길을 여는 과정을 통전적으로 탐구합니다.


장재형목사의 설명을 따라 사도행전 25–26장을 다시 읽으면, 법정과 권력, 신앙과 역사, 개인의 결단과 하나님의 섭리가 한 무대에서 맞부딪히며 서로를 드러내는 장면들이 놀라울 만큼 유기적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총독 벨릭스 앞에서 사실상 무죄에 가까운 평결을 얻고도 헤롯의 영내에 느슨히 구류되었던 바울은, 새 총독 베스도의 부임과 함께 또 한 번 역사의 한가운데로 소환된다. 겉으로는 한 사람의 피고인이 재판을 받는 서사처럼 보이지만, 장재형목사는 이 이야기를폭풍 전야의 법정으로 해석하며, 조용히 끓고 있던 시대의 불씨와 하나님이 미리 보시고 이끄시는 섭리의 손길을 겹쳐 읽게 한다. 베스도가 부임 사흘 만에 약 120km 떨어진 예루살렘으로 서둘러 내려갔다는 짤막한 기록에는 이미 유대가 화약고였다는 시대 감각이 배어 있고, 이어지는 지방 행정가들의 오판과 폭정은 마침내 주후 66년에 유대전쟁으로 폭발한다. 티투스의 예루살렘 함락과 성전 파괴, 마사다의 자결로 이어지는 이 비극의 서막 바로 앞에서, 바울의 재판은 열리고 있었다. 역사의 바람은 차갑고 거셌지만, 그 바람은 복음의 횃불을 끄지 못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 바람을 이용해 횃불을 제국의 심장부로 옮기신다.

새 총독의 부임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분노를 다시 점화했다. 그들은 가이사랴에서의 지난 패배를 만회하듯,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이송해 달라 요청한다. 표면적 명분 뒤에는 길목에 매복한 자객들의 흉계가 도사렸다. 그러나 베스도는 로마법의 원칙, 곧 고발자들이 피고 앞에서 정식으로 송사해야 한다는 절차를 근거로 그들의 계산을 일축한다. 장재형목사는 베스도가 후대의 평가에서 호의적이지 않은 인물일 수 있으나, 이 최소한의 법치가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보호막처럼 작동했다고 본다. 가이사랴에서 재개된 재판에서도 유대인들은 구체적 죄목을 입증하지 못한다. 바울은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담대하게 말한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에서, 새로 부임한 총독의 정치적 셈법이 모습을 드러낸다. 지역 통치의 안정을 위해 예루살렘 종교귀족들과의 관계가 중요했던 베스도는 바울에게예루살렘에 올라가 내 앞에서 심문을 받겠느냐고 묻는다. 종교 권력의 환심을 얻으려는 무심한 제안은 곧바로 암살의 위험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그 순간 바울은 자신의 합법적 권리, 곧 로마 시민의 상소권을 행사한다.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내가 가이사께 호소하노라.” 이 한마디는 유대 지도자들의 음모와 지방 행정가의 계산을 단숨에 무력화한 역전의 수였다. 더 이상 그 누구도 임의로 사건의 방향을 바꿀 수 없고, 오직 황제의 법정만이 이 사건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장재형목사는 이 장면을 단순한 법기술이 아니라, 약속을 향한 순종으로 읽는다. 예루살렘에서 주께서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하리라말씀하신 이상, 상소는 두려움의 도피가 아니라 소명의 이행이었다. 여기서 법은 믿음의 대립항이 아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경로를 따라 그분의 사자를 정확한 장소와 시간으로 운송하는 섭리의 도구이며, 신자는 믿음으로 그 도구를 지혜롭게 사용한다. 헤겔의이성의 간계가 말하듯, 인간의 의도들이 서로 부딪히고 뒤틀리는 사이에도 더 높은 이성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관철하듯,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악의와 실리, 두려움과 탐욕까지 엮어 더 큰 선을 이룬다. 훗날 바울이 로마서 8 28절에 기록한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선언은 이러한 삶의 경험을 관통한 고백이다. 라인홀드 니버가비극을 넘어서라고 말했듯, 눈앞에 펼쳐진 비극과 모순이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키지 못한다는 확신이 여기에 서린다. 섭리(pro-videre)미리 보아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이며, 예정은 인간의 자유를 지우는 숙명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자유가 이끄는 구원의 드라마다.

상소로 사건의 무대가 바뀌고 있을 때, 유대의 마지막 분봉왕 아그립바 2세와 누이 버니게가 베스도를 예방하기 위해 가이사랴에 도착한다. 요세푸스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아그립바는 비교적 온건했으나 시대의 비극을 피하지 못했고, 버니게는 여러 스캔들로 회자된 인물이었다. 권력의 화려함 속에 도덕의 공백이 어른거리는 이 방문을 통해, 장재형목사는 하나님이 어떻게 타락한 권력의 무대를 복음 선포의 강단으로 전환하시는지 보여준다. 베스도는 바울 사건의 본질을예수라 하는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논쟁으로 정리하며, 자신으로서는 판결을 내릴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복음의 심장부가 세상 권력의 언어로 축소될 때, 복음은 오히려 더욱 또렷해진다. 아그립바가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고 하자, 고위 관료들과 군 지휘관, 도시의 유력자들이 모인 화려한 재판장은 덧없는 구경거리가 아닌 복음 공청회로 형태를 바꾼다.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화려한 권위의 상징을 드러내며 입장하고, 천부장들과 고관들이 둘러선 가운데 바울이 호송되어 들어온다. 시작도 전에 베스도는죽을 죄를 찾지 못했다는 취지의 언급을 내놓는다. 사실상 무죄를 전제한 상태에서 변론이 열리는 아이러니는, 하나님이 친히 피고의 결백을 보호막처럼 두르셨다는 것을 암시한다. 아그립바의 허락이 떨어지자 바울은 손을 들어 변론을 시작한다. 장재형목사의 시선은 여기서 바울의 수사학적 탁월함과 영적 통찰이 어떻게 결합되는지에 주목한다. 바울은 먼저 아그립바의 유대 전통과 율법에 대한 이해를 높이 평가하며 청중의 문을 연다. 그러고는 자신이 바리새인으로서 가장 엄격한 길을 걸어온 자였음을 밝히고, 자신이 지금 고소당한 이유가 조상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 곧 메시아와 부활의 소망 때문임을 선명하게 정리한다. “하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심을 어찌하여 믿지 못할 것으로 여기느냐는 질문은 좌중의 양심을 찌르는 직설이며, 논쟁의 축을 부활로 재배치하는 전략이다.

이어서 바울은 자신의 과거, 곧 교회를 핍박하던 열성적인 폭력의 역사까지 숨김없이 고백한다. 다메섹으로 가던 길, 해보다 더 밝은 빛 가운데 임하신 부활의 주님을 만나 땅에 엎드러졌고, 그분이일어나 네 발로 서라고 일으키셨음을 증언한다. 부르심은 쓰러뜨림에서 시작해 일으킴으로 완성된다. 그가 받은 소명은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눈을 열어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여 죄 사함과 기업을 얻게 하는 일이었다. 바울은하늘에서 보이신 이상을 거역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회개에 합당한 행위로 자신의 증언을 입증해 왔음을 밝힌다. 여기서 간증은 일회적 체험의 과시가 아니라 지속적 삶의 열매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그러자 베스도가 참지 못하고네가 미쳤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고 외친다. 세상 지혜가 부활의 지혜를 광기로 오해하는 전형적 반응이다. 바울은 흔들림 없이나는 미치지 않았다.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한다고 응수하고, 곧장 재판의 초점을 아그립바에게로 옮긴다.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니 담대히 말합니다. 이 일은 한 구석에서 행한 일이 아닙니다.” 복음은 음지의 소문이 아니라 역사의 한복판에서 벌어진 공개적 사건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이어서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라는 질문이 날아간다. 긍정하면 바울의 논리가 열린다. 부정하면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해야 한다. 아그립바는적은 말로 나를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느냐며 냉소로 방패를 든다. 하지만 그 순간 이미 역할은 바뀌었다. 왕과 총독, 고관들과 군 지휘관, 도시의 유력자들 앞에서 바울은 더 이상 피고가 아니다. 그는 복음의 증인이자 설교자이고, 청중은 양심의 법정에 선 피청자다. 바울의 마지막 말은 그 사실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말이 적든 많든,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이 이 쇠사슬 외에는 다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쇠사슬은 신체를 묶지만, 복음 안에서 자유인은 바울이다. 세상은 그를 죄수로 부르지만, 하나님은 그를 사도로 세우신다.

결론은 분명했다.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아무 죄도 없다.” 그리고 덧붙는 말,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않았더라면 석방될 수 있었을 터인데.” 표면적으로는 아쉬움처럼 보이는 이 코멘트는, 사실 바울의 선택이 석방보다 소명을 우위에 둔 결단이었음을 역설적으로 증언한다. 그의 목표는 풀려나는 것이 아니라 로마에 이르는 것이었다. 주께서 예루살렘의 밤에 약속하신로마에서도 증언하리라는 말씀을 따라, 상소는 곁길이 아니라 직행이었다. 이후의 항해와 난파, 섬에서의 겨울나기, 다시 바다로 나아가는 여정까지 모든 우연과 돌발은 바울을 집어삼키지 못했다. 오히려 그를 제국의 심장으로 실어 나르는 바람이 되었다. 이 역설을 장재형목사는 섭리의 문법으로 읽는다. 하나님의 시간은 인간의 체감과 다르고, 하나님의 자유는 인간의 계산과 다르다. 그 차이만큼 복음은 더 깊이,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간다.

이 모든 이야기가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는 바는 무엇인가. 장재형목사는 첫째, 불의와 혼란의 시대에도 법과 제도의 원칙이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은 제도적 정당성을 신앙의 적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공공선과 생명 보존, 복음의 통로를 위해 합법적 수단을 정직하고 담대히 사용한다. 둘째, 공적 공간에서의 변증은 적대자를 이기려는 고성을 쌓는 일이 아니라 상대의 전문성과 양심을 인정하는문 열기로 시작한다. 바울의 아그립바 호명은 그 모범이다. 셋째, 간증은 말의 공방이 아니라 삶의 열매다. “회개에 합당한 일이 없으면 가장 정교한 논증도 울리는 꽹과리에 그친다. 넷째, 비극의 시선 너머에 서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용기다. 유대전쟁의 재와 폐허가 역사를 닫아버릴 듯하던 때, 하나님은 한 죄수를 통해 제국의 중심에 길을 내셨다. 우리는 오늘의 법정, 오늘의 공청회, 오늘의 회의실과 강의실, 오늘의 기사와 댓글창에서도 같은 하나님을 만난다. 그분은 여전히 문을 여시고 닫으시며, 여신 문을 닫을 자가 없다.

사도행전 25–26장은 두 막으로 진행되는 하나의 서사다. 첫 막에서 바울은 상소를 통해 법의 문을 밀어 로마의 길을 연다. 둘째 막에서 그는 왕과 총독, 고관과 군 지휘관, 도시의 유력자들 앞에서 복음의 심장, 곧 부활의 소망을 변증한다. 그리고 커튼콜에서 울리는 평결은 단호하다. “죽을 죄가 없다.” 이것은 바울 개인의 결백 선언을 넘어 복음 그 자체의 자유 선언이다. 세상은 쇠사슬을 걸 수 있지만, 진리가 묶이는 일은 없다. 아이러니하게도상소만 하지 않았다면 석방되었을 것이라는 말은, 당장의 석방이야말로 소명의 좌초가 될 뻔했음을 드러낸다. 바울은 석방이 아닌 방향을, 편안함이 아닌 목적을, 지금의 이익이 아닌 하나님의 미래를 선택했다. 그 선택이 수백 년 뒤 기독교가 로마 제국을 품게 될 역사의 씨앗이 되었다. 장재형목사의 해설은 이 모든 결을 신학과 역사, 영성과 수사의 언어로 촘촘히 엮어낸다. 그의 독해를 따라가다 보면, 한 사람의 법정 변론이 어떻게 제국의 운명을 흔들고, 한 번의 상소가 어떻게 세기의 선교 전략으로 바뀌는지 보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자신의 자리를 본다. 오늘 우리 앞에도 문이 있다. 여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처럼 약속의 말씀 위에 서서, 각자에게 주어진 법정과 무대, 로마와 청중 앞에 담대히 나아간다. 그리고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기도한다. “말이 적든 많든, 이 쇠사슬만 외에는 다 나와 같이 되기를.”


davidjang.org
작성 2025.09.06 19:33 수정 2025.09.06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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